꽃대 관리와 색화 발색의 요령(1)

2006. 11. 30. 21:01난초 기르기·화보/부귀란·석곡

1. 도입

난을 키우면서 꽃을 피워 그 화형과 색감과 향기를 즐기는 것은 애란생활의 일년을 마감하는 작업이자 보람이며 큰 기쁨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한 해의 농사를 검증 받는 시험대다. 이런저런 이유로 꽃대가 도중에 물크러지거나 말라버리는 일이 생겨, 혹은 꽃이 피었으나 만족스러운 색을 내지 못 할 때는 아쉬움 속에서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말이 쉽지 난을 키우며 꽃을 보는 데에 실패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 애란인이라면 그게 얼마나 잔인한 고통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2. 꽃을 피우기 위한 전제

앞서 말했듯이 난의 꽃은 일년 농사의 완성이자 시험대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설레는 만큼 조심스럽기도 하다. 즉, 꽃은 저절로 꽃대가 붙으면 잠시 지켜보다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일시적인 통과의례가 아니라 일년 동안 정성으로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년 동안 난을 튼튼하게 키워야 한다. 병충해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고 물도 적당히 주고 바람과 햇빛도 적당히 주어 난이 최적의 조건에서 자라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년도에 꽃을 피운 난의 꽃대 제거와 그 이후의 처리 및 신아 관리에서부터 올해의 꽃대 관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누차 들은 얘기지만 난이 꽃을 피우는 것은 종족 번식 본능의 발현이다. 새 촉 한 두 촉으로 번식하는 것보단 꽃씨라는 수단을 통해 일거에 수십 만 개의 새로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방편으로 꽃을 피운다. 난이 허약해져 스스로 죽음의 위기를 느낄 때도 자신을 희생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종족 보존의 본능이 발현되어 꽃을 피운다. 전자의 경우는 경사에 해당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비극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 난이 꽃을 피운 후 죽거나 무척 허약해져 비칠거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꽃을 피우려 할 땐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한 조치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난의 꽃눈과 새 촉의 잠아는 처음부터 구분돼 있는 것이 아니고 춘란의 경우 밤 최저온도가 25도 이상 되는 날, 즉 열대야가 3일 이상 지속될 경우 난의 가구경(벌브)에 붙어 있는 잠아가 꽃눈으로 바뀐다고 한다. 이는 다른 난의 경우도 필요 온도에서 차이만 날 뿐 마찬가지다. 난이 꽃을 피우려면 이 잠아가 신아와 꽃눈으로 바뀌는 게 적정한 선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대부분은 난 스스로 알아서 조정하지만 그러지 못 할 경우, 즉 지나치게 많은 새 촉이 나올 경우 꽃을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절해 줘야 한다. 신아가 지나치게 많이 붙을 경우 대부분의 난이 꽃대를 붙이지 못 하거나 붙이더라도 촉수와 세력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수의 꽃대를 올리게 된다. 이는 꽃대를 올릴 때 난이 소모하는 에너지만큼이나 신아 한 대를 올릴 때 소모하는 난의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봄철 신아가 나올 때 좀 약하다 싶은 난들은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뒷촉의 잎이 누래지며 노대가 나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는 새 촉을 올리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일 오래된 촉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새 촉에게 밀어주고 자신은 죽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신아를 올릴 때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신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난은 꽃을 피우는 데에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다. 또 그 해에 눈을 뜬 잠아가 다 신아로 변하여 화아분화기에 꽃눈으로 바뀔 잠아가 남아 있질 않다. 그래서 신아가 많이 오른 해엔 꽃대가 안 붙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감안하여 촉수가 어느 정도 되어 꽃을 볼 시기가 됐다고 판단되는 난일 경우 봄철에 모촉 네 촉에 한 촉의 비율보다 더 많은 신아가 올라오면 신아의 잎이 벌어질 무렵쯤 약하게 올라오는 새 촉은 적당히 솎아 주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난이 일본춘란 홍주금화 복지광이다. 복지광은 자체적으로 몸살만 하지 않으면 기존의 촉수에 관계없이 1.5촉 당 새 촉을 한 촉씩 올릴 만큼 번식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복지광을 대주로 만들기란 무척 쉽다. 그러나 대신 꽃대 붙이기가 다른 난들에 비해 무척 어렵다. 복지광이 어느 정도 촉수가 되면 꽃을 보기 위한 준비로 봄철에 너무 많이 붙은 새 촉을 적당히 솎아줘야 한다. 물론 열 서너 촉 이상의 대주가 되면 자체 세력이 충분하여 2.5촉에 새 촉 한 촉의 비율로 신아를 올리고도 꽃대를 서너 대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 겨울철 관리가 중요하다. 난이 영상 5도∼10도 사이에서 두 달 이상 휴면을 취하지 않으면 꽃대를 못 올린다. 설사 꽃대를 올리더라도 부실하거나 꽃이 핀 후에도 제 성질을 드러내지 못 한다. 특히 혜란의 경우 영상 5도 이하에서 지나치게 차게 관리할 경우 꽃을 안 피우거나 아주 초라하게 피우는 경우가 많다. 원래 꽃대가 잘 안 붙는 철골소심의 경우 겨울에 영상 8도 이하의 온도에서 3일 이상만 노출되면 이듬해 꽃대를 안 붙일 확률이 80% 이상이다.



3. 화아분화(꽃눈 붙이기)

과거엔 위에서 언급한 난의 생리를 이용하여 난을 고생시킴으로써 억지로 난의 화아분화를 유도했으나 이는 바람직하지 못 하다. 세력이 튼튼한 난은 인위적인 화아분화를 유도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대를 올린다.

(1) 춘란
장마가 끝난 후 7월 중순∼하순 사이에 꽃눈이 형성되어 8월 중순이면 화장토 위로 올라오고 그 상태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2월 중순(중국춘란 고전명품)∼4월 중순 사이에 꽃이 핀다.

(2) 한란
춘란과 비슷한 시기인 6월 중순∼7월 중순에 꽃눈이 형성되어 8월 하순부터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여 11월 상순을 전후하여 핀다.

(3) 광엽혜란(보세란 계통)과 춘한란, 금릉변
춘란과 같은 시기에 꽃눈이 형성되어 보세란은 양력 12월 하순∼2월 중순, 춘한란은 2월 초순∼3월 중순, 금릉변은 4월 중순∼5월 상순에 핀다.

(3) 관음소심, 철골소심 등의 추란소심
5월 중순경에 꽃눈이 형성되어 9월경에 꽃이 핀다.

(4) 옥화나 건란, 사계란같은 하란들은 4월에 꽃눈이 형성되어 6월 하순∼8월 상순에 걸쳐 핀다.

(5) 풍란(부귀란)과 석곡(장생란)은 10월 상순∼하순에 꽃눈이 형성되고 석곡은 이듬해 4월에 풍란은 이듬해 6월에 꽃이 핀다.

그래서 꽃을 피우고 싶을 경우 꽃눈이 맺히는 시기에 한 두 번 정도 물주는 간격을 두 배로 늘리고 햇빛을 많이 쪼여 준 뒤 질소질이 전혀 없는 화아분화촉진제를 한 두 차례 주거나 제1인산칼륨(KH2PO4) 1,000배액을 한 두 번에 걸쳐 관수해준다. 제1인산칼륨에 대해선 얼마 전 김상일 회원이 화두를 던지고 변승완 회원과 김우연 회원의 반론성 질문이 있었던 바, 금년 초 전국대회 전시회에 명예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온 일본 난계의 중진 세 사람에게 심사를 마친 후 다음날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직접 그 문제를 질문했다. 그랬더니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며 어떤 과학적 연유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낸 사람이 없지만 경험적으로 화아분화를 유도하는 데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어떤 비료나 활력제를 주든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난이 병충해, 지나친 건조나 극심한 일교차, 갑작스러운 저온 등의 기후적이고 환경적인 원인이나 비료나 농약의 오남용 등으로 인해 난의 생리적 리듬이 깨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은 우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꽃대를 올릴 여유가 없다. 그러다 그런 상태가 극심해지면 최후의 몸부림으로 자신을 죽이고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꽃대를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꽃이 난의 일년농사의 완성이 아니라 영원한 종말이 된다.

일단 꽃대가 붙으면 촉수에 비해 적정한 숫자의 꽃대가 붙었는지 먼저 확인한 뒤, 지나치게 많이 붙은 꽃대는 적정 숫자만 남기고 솎아 주어야 한다. 세 촉 이하의 난에 붙은 꽃대는 꼭 꽃을 확인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는 난 아니면 따주고 세 촉 이상의 난일 경우 서 너 촉 당 꽃대 한 대 정도의 비율로 꽃대를 붙여두는 게 좋다. 만일 허약해져서 죽기 직전의 몸부림으로 꽃대를 단 경우라 판단되면 꽃대를 발견하는 즉시 과감히 잘라 주고 특별히 요양을 시켜 회복을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해마다 무리하게 꽃을 보려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한 번 꽃을 본 난은 한 2년쯤은 꽃대가 붙으면 따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계속 꽃을 피워도 괜찮을 만한 대주의 난이라도 가능한 한 꽃대 수를 줄이는 게 좋다. 특히 한란의 경우 매년 연속하여 3년 이상 꽃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안 그럴 경우 난의 세력이 현저히 떨어져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보다 앞선 난문화와 배양법을 지닌 일본은 같은 화분에서 3년 이상의 간격으로 한 번씩만 꽃을 피운다.

그런데 춘란의 경우 장마철 이전에 화장토 위로 올라오거나 10월 이후 화장토 위로 올라오는 꽃대들이 있다. 이 경우 둘 다 제거해 주는 게 좋다. 색화의 경우 이 두 경우 다 제대로 된 발색을 유도하기가 불가능하다. 또 춘란의 경우 꽃눈이 형성된 후 약 300일∼330일이 지난 후 꽃이 피고 온도가 25도 이상 되면 피지 못 한 꽃대는 말라버린다. 따라서 늦게 10월 이후에 올라온 꽃대가 피는 시기는 300일 내지 330일이 지난 시점이면 이듬해 4월 중순 이후가 된다. 그 때쯤이면 산에선 아직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꽃이 피지만 주택가 난실에선 이미 3월 중순이후부터 25도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도저히 피질 못 한다. 강제로 피우더라도 일찍 붙은 꽃대와 성장 정도가 달라 꽃대도 짧고 꽃도 더 작은 상태에서 피게 돼 전시회에 내면 관상 측면에서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출처:난마을 김덕수님 강의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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