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의 배신 - 그 판별법
2006. 11. 30. 21:11ㆍ난초 기르기·화보/배양자료
새까맣다고 할 정도로 진한 색깔의 자화를 보면 누구나 가슴이 설레며 나도 저런 자화 하나 길러봤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다. 색채 심리학에서 자색, 혹은 자주색은 고귀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자주색은 왕의 색깔, 신의 색깔로 간주되어 왕의 옷색깔이나 혹은 종교적인 장소의 가장 신성한 곳을 장식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러한 심리의 발로인지 몰라도 여러가지 색화들 중에서도 자화가 지니는 매력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화의 매력에 깊이 빠져본 사람일수록 자화의 배신 앞에 더 많이 분통을 터뜨리고 실망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분명 봉오리 때는 잡색 하나 없이 새까만 자화였는데 피면서 시시각각 색이 날아가버리거나 뒷면은 새까만 색인데 꽃잎의 앞면엔 자색이라곤 전혀 안 들어가고 새파란 꽃이거나 구입했을 때는 분명 활짝 핀 꽃이 흠잡을 데없는 자색 일색이었는데 몇 년 연속 자색의 기미만 조금 남고 다 날아가 전시회에 내기는 커녕 자화라고 누구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난 앞에 도무지 뭐가 자화이고 어떤 자화가 색이 안 날아가고 언제나 자색으로 피는가 하는 의구심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더 진정한 자화 하나 소장해 보려고 수많은 댓가를 치룰 것이다. 사실 본 난강좌 아이콘에 자화에 관해 주진수님이 쓴 글(게시번호 #77번)이 있지만 그 글에선 자화의 기준을 너무 관대하게 잡고 있어 그 글에 따라 자화의 기준을 잡고 구입하다 보면 그만큼 더 실망도 많을 것이라 생각되어 망설임 끝에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주진수님의 글은 산채 시 발견된 자화를 기준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상황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선 자화를 산채하든, 구입하든, 집에서 재배를 하든 실망하지 않고 진정 자화라고 만족할 만한 것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할 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본인 역시 자화 때문에 많은 실망과 분노를 경험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은 터이지만 지난번 난마을 전시회 때 모 회원이 잠깐 보자고 하며 보여준 난 때문이다. 필름통에서 중국춘란 고전명품 대부귀보다 더 풍만하고 대륜의 화형을 갖춘 민춘란 꽃 한 송이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본인의 의견을 묻는 그 회원에게 그냥 화형 좋은 민춘란일 뿐이라고 답변해 주었더니 몹시 실망스러워하며 꽃봉오리 때는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새까만 자화이고 봉오리도 얼마나 통통하고 탐스러운지 모른다며 그 화형과 색에 반해 거금을 주고 샀는데 벌써 몇 년째 봉오리 때는 가슴을 온통 설레게 해놓고 필 때면 한번도 예외없이 실망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특징을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난은 절대 자화라고 부르기가 미안한 품종이니까 그냥 산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그냥 난실에서 봉오리만 감상하든지 하라고 충고해 줬다. 자화의 희귀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색화가 그렇게 많이 나온 일본에서도 자화는 등록된 것이 자보, 천자황, 자홍 등 서너 종에 불과할 정도이고 그나마 그 품종들도 발색이 안정적으로 고정되지도 못한 쉽게 말해 B급 내지 C급에 불과한 자화다. 중국에서도 자화는 극히 희귀하다. 반면에 한국은 자화의 천국이라 할 만큼 우수한 자화가 많이 쏟아져 나온다. 또 전시회에도 우수한 자화들이 비교적 많이 선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나 전시회에선 그 환상적인 자화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그런 자화를 거금 주고라도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이 들까? 사실 제대로 된 자화 하나를 찾아보기란 홍화소심 찾기만큼이나 어렵거나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배양 잘못으로 그 품종이 절종됐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사실은 책이나 화보에 실린 환상적인 색깔의 자화 대부분이 한 해 어쩌다 색이 기가 막히게 나왔다가 이듬해부터는 도저히 남에게 내놓을 수 없을 만큼 연속 색이 다 날아가 녹색이 가득 차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떤 난이 키우는 사람의 노고에 보답을 하고 어떤 난이 번번이 실망을 시킬까? 여기서 우린 자화를 바라보는 기준을 냉철하게 아주 좁힐 필요가 있다. 먼저 자화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봉오리 때 사지 말고 활짝 피고 나서 한 일주일쯤 지난 뒤에 색의 안정도를 보고 구입하자. 만일 녹이 많이 차 있다든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자색은 적어지고 녹이 많아진다든지 하는 것은 상인이나 소장자의 어떤 감언이설에도 속아넘어가지 말고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는 것이 이후 자화 때문에 속을 썩이지 않는 비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꽃이 완전히 핀 것을 보고 구입하려 하면 그 난이 그 때까지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고 벌써 남의 수중으로 넘어간다는 데에 있다. 누구나 좋은 자화를 소장해 보고 싶은 욕심과 조급증 때문에 차분히 기다리다 남에게 빼앗기고 싶어하질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땐 구입하되 반드시 각서를 받아 두는 게 좋다. 그래서 녹이 차오른다든지 또는 앞면이 퍼런 가짜 자화라든지 하면 당장 환불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좋은 자화는 귀하기 때문에 가격도 촉당 100만원이 훨씬 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안정된 발색을 보이는 성질 좋은 자화의 특징과 그렇지 못한 자화의 특징을 알아두어 자화를 구입하거나 산채할 때 참고하도록 하자. 먼저 안정된 발색을 보이는 극히 우수한 자화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자화가 우수한 자화일까? 답은 간단하다. 화통 처리를 하든 안 하든, 아파트에서건, 단독주택에서건, 발색법에 따라 약간의 색깔 차이는 있을지라도 언제나 해마다 자색으로 피는 자화라야 진정한 자화이며 색이 날아간다든가, 녹이 차오른다든가, 한 해는 기가 막힌 자색으로 피었다가 몇 년 연속 녹만 차다가 또 어느 해 갑자기 자색이 기가 막히게 발현되는 자화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화로 보긴 어렵다. 첫째, 그런 우수한 자화는 꽃잎의 색깔이 탁하고 광택이 없어 마치 핀 지 오래 되어 질 때가 된 것같은 색감을 보인다. 둘째, 혀가 꽃잎의 주부판과 마찬가지로 짙은 자색의 색설이거나 혹은 색설에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물론 이 경우도 사람을 실망시키는 자화가 제법 있기 때문에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셋째, 꽃대와 포의에 자색 근과 색소가 아주 풍만하게, 광범위하게 들어가 있는 난들일 경우 색이 항상 안정적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화다. 그러나 이런 자화라 할지라도 발색을 잘못하면 누가 보든 자화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색의 농도가 많이 떨어져 감상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화는 일찍 화통을 씌워 차광했다가 12월 들어서자마자 꽃대를 벗겨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계속 햇빛을 쪼여 주되 최대한 저온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사실 햇빛을 쪼이면 온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자색을 결정하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분해되고 엽록소가 차올라 제대로 된 자색을 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햇빛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가장 온도가 낮은 창가 맨 아랫쪽 같은 데에다 두고 겨울을 나게 한다. 충분한 햇빛과 저온만 충족시키면 자화처럼 발색이 손쉬운 것도 없다. 그럼 이번엔 가짜 자화, 즉 절대 속아서 구입하지 말아야 할 자화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물론 꽃이 피고 난 다음에 가짜 내지 사이비성 자화를 판별하기란 쉽기 때문에 그 문제는 여기서 빼기로 한다. 첫째, 산채 난 중에서 포의 속에 비친 꽃 색깔이 진한 자색으로 비친다고 하여 자화로 속진 말자. 특히 차가운 겨울엔 혹한에 꽃이 얼어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난들은 포의를 까보면 얼어서 조직이 파괴된 것인지 아직 조직이 살아 있는 지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둘째, 꽃을 까보았을 때 살아 있는 조직의 까만 색 봉오리라고 해서 속단하진 말자. 반드시 봉오리를 벌려서 바깥쪽 꽃잎의 색깔이 아닌 안쪽의 색깔을 보자. 만일 안쪽이 퍼런 기색이 보인다면 절대 미련을 가져선 안 된다. 셋째, 산에서, 혹은 난가게에서 포의를 막 벗고 봉오리를 살짝 내민 자화의 경우 그 색깔에 현혹되어 이 정도면 틀림없을 것이다라고 속단했다가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바로 꽃봉오리의 광택이다. 만일 포의 밖으로 삐져나온 자화의 봉오리가 아무런 광택도 없는 것이면 비교적 안심해도 된다. 그러나 만일 광택이 반질반질하게 난다면 미련을 버리는 게 좋다. 광택이 많은 것일수록 엉터리 자화다. 그런 난들은 99%이상 피면서, 혹은 봉오리 상태에서 점점 녹이 차오르다 나중에 거의 다 녹이 차버리거나 아니면 겉은 여전히 새까맣지만 안쪽은 전혀 자색이 없는 녹색의 꽃잎을 지닌 것들이다. 에나멜 칠을 한 것처럼 기가 막히게 광택이 나는 것일수록 사이비 자화의 가능성은 100%에 더 가깝다. 넷째, 무광의 봉오리라 해도 햇빛에 계속 놔두었더니 봉오리 위에서부터 조금씩 녹이 차오르거나 혹은 그런 기미가 보이는 난이라면 역시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대부분 이런 난들이 어쩌다 한 해 기가 막히게 발색이 되어 즐겁게 했다가 이후부터 연속 색이 날아가고 녹이 차올라 실망을 시키는 난들이다. 그러나 이런 난들은 혹독하게 겨울을 나게 하면 또 어느 해 갑자기 기막힌 자색으로 피기도 한다. 다섯째, 파는 사람은 자화라고 우기지만 자색의 근이 뭉쳐 있을 뿐 꽃잎 바탕에 자색의 색소가 녹아 있는 게 아니면 절대 구입하지도 말고 산에서 그런 종자를 만나더라도 그냥 두고 오자. 자화의 범주를 어느 정도 선에서 좁혀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애란생활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
출처:난마을 김덕수님이 올리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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