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태 혹은 산태 덮기의 효능과 문제점

2006. 11. 30. 21:12난초 기르기·화보/배양자료

난을 키움에 있어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장점만 있거나 절대적으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태 혹은 산태 덮어주기도 마찬가지다. 우선 난의 생리를 이해하면 수태나 산태로 덮어주어 보습을 해주는 것이 왜 이로운 지 알 수 있다.

원래 난은 야산의 부드러운 흙에 뿌리를 박고 솔잎 등의 낙엽이 떨어져 쌓여 썩은 부엽토에 잎의 기부부위까지 덮인 채 살고 있으며 자생지의 환경도 바람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아늑한 곳이다. 부엽토나 흙이라는 것이 비가 내리면 질퍽질퍽할 정도로 물을 많이 머금고 가물면 먼지가 날리도록 바짝 말라버리는 게 아니라 넓은 산이라는 조건상 항상 일정한 수분만을 머금고 있다.

이런 자생지의 조건에서 난은 곧 벌브와 그 아래 뿌리 부분은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생지의 환경과 거의 비슷하게 해줄수록 난은 난실이라는 인위적 환경에서도 더 잘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흙에 뿌리를 내린 자생지의 난들은 수분을 공급해 주는 흙에 그 수분을 빨아올리는 뿌리의 표면적 전체를 맞대고 살아간다. 거기에 비해 난석에 심은 난의 뿌리는 난석과 직접 맞닿아 수분을 공급받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난석끼리의 공극으로 인해 생긴 빈 틈새로는 뿌리가 공기 호흡은 할 수가 있지만 수분과 직접 맞닿을 수가 없어 수분 공급의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를 극복해 주기 위해 수태나 산태로만 심으면 뿌리는 아주 왕성하게 잘 내리고 물을 매일 주다시피 해도 분명 과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난석에 심었을 때처럼 뿌리가 많이 상하지 않고 더 잘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뿌리가 약한 난을 수태나 톱밥, 혹은 코코넛 껍질 부순 것 등에 심어 기르면 뿌리가 잘 내리는 현상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뿌리의 모든 면적에 식재가 닿아 수분을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난석을 거부하고 산에 가서 부엽토와 솔잎을 걷어다가 그것만 식재로 삼아 심어주어 성공한 애란인들도 있다.

그러나 수태나 부엽토나 코코넛 피트나 톱밥같은 보습력이 일정한 식재에만 심어서 관리할 수 없는 이유가 앞서 언급한 자생지의 조건과는 달리 화분이라는 인위적 환경은 물을 주면 논바닥처럼 물이 과도한 상태가 되고 말랐을 때는 모래밭처럼 건조한 상태가 된다. 또한 겨울과 여름같은 극단적인 기온차가 나타날 땐 외부 온도도 그대로 뿌리로 전달이 된다. 습도, 온도 변화가 비교적 적은 자생지에서 사는 난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다. 따라서 수태 등에 심어 관리할 때는 통풍이나 관수 등에 관해 난의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난에게 해가 된다.

그래서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할 수 없이 난석에 심어 관리를 하게 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그러한 난석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수태나 산태를 덮어주는 방법이다. 사실 수태를 덮어주는 방법은 춘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습도를 요하는 광엽혜란에서는 과거부터 일반화되었던 방법이다.

난석에만 심었을 경우 화분 위쪽, 아래쪽, 가운데쪽의 난석들의 마르는 상태가 일정하지 않아 위에서 아래로 쭉 뻗어내린 뿌리 하나하나가 윗쪽에선 건조현상을, 가운데에선 과습현상을 아래쪽에선 약간의 건조현상을 겪게 되며 온도 역시 분 윗쪽과 가운데와 아래쪽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난이 완성한 성장을 하는 데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한겨울에 가슴 위쪽은 더워서 땀이 날 정도로, 가슴 아래와 무릎까지는 추워서 고드름이 얼 정도로, 그리고 무릎 아래는 따뜻한 상태로 살아간다고 하면 과연 우리 몸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그런 현상이 안 생기게 우리는 온 몸을 고루 감쌀 수 있는 긴 코트나 양말 등등의 보온재를 착용한다.

수태를 덮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온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맞춰주려고 옷을 입는 것처럼 분 속의 난석이 일정하게 마르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난이 화분이라는 인위적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생지에 가까운 효과를 내주게 할 수 있어 난의 생육에 크게 도움이 된다. 수태를 덮어줌으로써 난석이 더디 말라 뿌리의 과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태를 덮지 않을 경우 위, 아래, 가운데 부분의 난석들의 마르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아 오히려 뿌리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수태를 덮어줌으로써 일정한 보습효과가 있어 골고루 마르기 때문에 과습과 건조를 동시에 막아줄 수 있다. 물은 덮어준 수태나 산태가 바짝 말랐을 때 주면 가장 적당하다. 바짝 마른 수태를 들쳐보면 화장토는 물기가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 수태를 덮지 않았을 경우 화장토가 하얗게 말랐다 하지만 조금 쏟아보면 그 속의 난석들에는 물기가 있다. 그래서 화장토와 맞닿는 벌브와 뿌리 윗부분은 지나친 건조 상태에 놓여 있고 그 아래 뿌리 부분은 적당한 습도를 흡수하고 있는 불균형 상태지만 수태를 덮어주면 화장토부터 분 아래쪽까지 거의 일정하게 뿌리의 모든 부분이 적당한 습도를 흡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튼튼해지는 난은 당연히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도 커지기 마련이고 특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연부병이나 부패병같은 병균의 침입도 수태가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어 더욱 건강해진다. 날이 더워져 신아가 물크러지는 연부병이나 부패병의 경우 물 준 후 물이 마르지 않고 기부에 고여 있다가 햇빛을 받아 온도가 올라가면 세균이 활동하여 그 촉이 물크러진다는 과학공상소설을 우린 자주 접하고 있고 또 그걸 사실로 믿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자생지의 난들은 새 촉을 키우기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 아닐까? 자
생지는 바람이 강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아늑하다. 한여름에 자생지에 가면 바람 한 점 없이 지열과 습기가 온몸으로 후끈 밀어닥치며 그곳에선 비가 온 뒤 누가 일일이 기부에 고인 물을 털어내 주거나 닦아주지도 않는다.

난강좌난의 병충해에 관한 변승완님의 글들을 보면 세균은 공기 중에 떠돌다 잎의 기공이나 벌브와 뿌리의 상처 등을 통해 침입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수태를 덮어 주는 것은 벌브와 기부 부위를 오히려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막을 한 겹 쳐줬다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새 촉이 올라올 때나 꽃대가 올라올 때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마른 수태가 지장을 전혀 안 준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수태나 산태는 비닐막이 아니라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그 틈새로 신아나 꽃대가 얼마든지 뚫고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감한 신아나 꽃대에 일정하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시켜 줌으로써 성장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수태는 젖었을 때와 바짝 말랐을 때 그 수축의 정도차이가 극심하다. 그래서 꽃대의 경우 아직 어린 상태일 때, 젖었던 수태가 마르면서 수축되는 힘 때문에 꽃봉오리가 짓눌려 나중에 꽃이 피면 화형이 길게 늘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수축의 정도가 비교적 차이가 나지 않고 말라도 수태처럼 딱딱해지지 않는 산태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수태보다는 산태가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수태는 바짝 말랐다가도 물을 주면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물기를 흠뻑 머금고 있지만 산태는 아무리 물을 주어도 속까지 다 젖긴 힘들다. 그래서 산태는 산태의 겉면과 화장토 및 난석은 흠뻑 젖지만 벌브와 꽃대가 올라와 있는 부분에서는 혹시라도 염려가 되는 과습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훨씬 더 안전하며 훨씬 더 푹신푹신한 신축성이 있어 꽃대나 신아의 성장에 거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산태나 수태를 덮어줬을 경우 생기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는데 대부분 사소한 것이지만 그 중 비교적 큰 문제가 바로 수태나 산태 역시 식재 역할을 하여 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빛을 싫어하는 뿌리가 화분 위쪽 수태나 산태 속으로 뻗어나온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란 뿌리는 결국 수태나 산태를 뚫고 허공으로 혹은 분의 윗부분 밖으로 뻗어나가 건조한 대기 중에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가 제대로 못 자라고 마르기 일쑤다. 그런 뿌리들 때문에 분갈이할 때 상당히 귀찮고 심기도 참 애매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심을 때 난을 분 속에 좀 깊이 앉히고 난석을 화분 위까지 가득 덮지 않고 화분 제일 윗부분에서 1~2cm 정도 아래까지만 난석으로 심은 뒤 그 나머지를 수태나 산태로 감싸주면 화분 위까지 화장토로만 덮었을 경우처럼 뿌리가 분 위로 솟구치진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화장토를 분 위까지 덮은 뒤 그 위에 산태를 수북히 덮어주는데 마치 풍란을 수태로 심어 놓은 것처럼 둥그런 무덤같이 높이 덮어준다. 필자의 경험상 분명 해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는 게 지금까지 거의 7~8년 가량 수태 덮어주기를 해준 결과다. 처음엔 수태를 사용했으나 몇 년 전부터는 산태를 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수태를 덮어준 것 빼고는 산태로 덮어준다.

다행히 지난번 전시회할 때 양재동 화훼 공판장 자재상엘 갔더니 산태를 가로 세로 약 30cm 크기로 큼직큼직하게 잘라놓은 산태를 팔고 있어 사다가 난에 덮어주고 있다. 큰 마대 하나 가득 25,000원 주고 사왔다. 분갈이 후 산태의 불순물만 약간 추려내고 화분의 넓이에 맞춰 적당한 넓이로 잘라 마치 화분을 이동할 때 알미늄 호일을 잘라 위를 덮듯이 그대로 덮어주면 아주 안성맞춤이고 덮는 데에 시간도 전혀 안 걸린다. 최근에 분갈이하여 산태로 덮어준 화분 사진 하나 한국춘란방에 올려놓았다. 게시번호 #1396번 글의 사진이 그것이다.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난마을 김덕수님의 글